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蜀 은 왜 2代만에 멸망하였을까? | Hanashi | 2014-04-15 18:05
나관중의 삼국지로 유명한 촉의 제 1대 황제 소열제 유비는 슬하에 양자 유봉(양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현재 통용되는 설로는 양자), 적자 유선을 두었다. 유봉은 관성제군 관우의 사망에 관련되어 후에 유비에게 참수되었고, 유선은 유비의 두번째 부인인 소열황후 감씨(첫번째 부인인 미부인은 황후의 호칭을 받지 못하였다) 의 아들이다. 유선은 아명이 阿斗인데, 태몽이 북두칠성에 관련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현대 중국에서 阿斗 는 [주변에서 살펴봐주어도 멍청해서 깨치지 못하는 사람] 에 대한 은어로 쓰인다고 한다) 유선은 유비 사망 후 촉한의 제2대 황제로 등극하여 촉한 멸망 까지 재위하였다. 잘 알려진대로, 장판파에서 훗날 촉의 오호대장군 중 하나인 조운이 조조의 대군을 단기 필마로 돌파하며 구해낸 유비의 아들이다.

유비의 일생일대 라이벌 조조는 위왕에 등극하고, 이를 그 아들 조비가 이어받았다. 물론 위 역시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촉과 같이 2대만에 어이없이 멸망하지는 않았고, 헌제로 부터 漢 황제의 제위를 강제로 선양받았다. 이후 5대 황제 조환에 이르러서 사마의의 후손들에게 선양하고 멸망하긴 했지만. 소위 말하는 1세대 군웅들의 후손이 여기서 그 후가 확연하게 달라지는데, 유선은 삼국지 애독자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처지까지 나락으로 떨어져있다. 어차피 조조 일당들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몇몇 일화를 소개해보자면,

- 제갈량의 4차 북벌(위 정벌)때, 이엄의 거짓 상소로 인해 우세한 위치에 있었던 아군을 성도로 다시 불러들이는 실책
- 진지와 황호. 옆에서 비위를 잘 맞춰주는 환관들을 총애하여 나라를 망침
- 전세가 불리하긴 했지만 강유가 위의 사마소와 대립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황제로서 끝까지 나라를 지키지 않고 투항해버림
- 촉 멸망 후 안락공에 봉해졌을 당시, 촉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에 지금 생활도 만족스럽고 좋아서 별달리 생각나지는 않는다는 병신같은 문답

물론 이에 대해, 약 40년간에 이르는 통치 기간동안 5차에 걸친 북벌에도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유선 또한 그리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긴 하다.........만, 기본적으로 유선과 조비(그리고 그 후손들)의 결과가 너무 극명하게 갈려서 말이지.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을 마구 하다보니 왜 유선이 이렇게 덜떨어진 황제가 되었을까, 호부 밑에 견자없다던데, 하는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았다.

조조의 아들 조비. 187년 출생이고 최초의 종군은 204년이다. 204 - 187 + 1 = 18 세에 최초로 종군하여 실전 경험을 쌓았다. 조조의 정책상 실패한 장수라도 바로 군령으로 처벌하지 않고 다시 설욕할 기회를 주었고, 조조는 사망 전까지 많은 전투를 치르었으니 그동안 통솔의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리고 217년에 위의 왕세자가 되었다. 조조 슬하에는 아들이 다섯이었으니 왕세자가 되기 위해서는 권력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는 방법도 익혔을 것이다. 그리고 220년에 위왕의 자리를 물려받았으니, 이때 나이는 220 - 187 + 1 = 34세.

유비의 아들 유선. 207년 출생이고 종군 기록은...... 없다. 유비 사후에 촉 황제로 즉위. 촉의 건국이 221년인이고 유선의 즉위는 223년이다. 이때 유선의 나이는 223 - 207 + 1=17세. 조비가 첫 종군할 나이 쯤 제위에 올라버렸다.

따라서 유선은 지도자로서의 덕목이라던가, 전쟁의 경험을 통해 통솔력과 판단력을 기른다던가, 漢 황실을 재건해야한다는 목적 의식 자체가 희미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유비의 목적이 황실 재건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의 입신양명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대외적인 슬로건은 황실 재건이었다. 그런 유비에 비해 후주 유선은 나라를 끌어갈 의지도, 능력도, 명분도 없었던 것은 확실하다.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승상을 두고도 결국 나라를 고스란히 바치고 말았잖아... (유비 관우 장비 제갈량을 보고 자랐는데도 도대체가 배운게 없다!) 제갈량 사후 장완, 비의 같은 괜찮은 신하들도 많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황호나 진지같은 개막장 환관들을 중용한 것도 유선의 의지였고, 따라서 복합적인 이유로 촉이 멸망하였다고는 하나 그 중 유선의 역할이 컸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대 국가들의 운명은 국가 수장의 역할이 큰 부분임을 상기하자.

... 차라리 죽음을 각오하고 국력 올인 위와 일대 결전이라도 펼쳤더라면 지금처럼 욕먹고 있지는 않았을 것을... 안타깝다.
비밀덧말